2007년 03월 10일
바람의 검심 완전판 1권

최근 군대에 메인 몸이 되면서 변한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만화책을 빌리러 책방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이다. 일단 집에 올라오는 주말에는 책방에 갈 정도로 여유있는 날을 보낸 적이 별로 없다. 왔다 갔다 하는 금요일과 일요일을 빼면 사실상 토요일만 온전히 쓸 수 있는데, 약속 하나만 잡아도 훌쩍 나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책방 잠깐 들르는 정도야 얼마나 시간이 들겠냐마는 원래 하나에 신경을 쏟으면 다른 데 정신을 파는 성격이 아니다.(즉 게으르다는 거잖아....ㅡㅡa)
하긴 지금 몸을 담고 있는 대구는 지방 도시 중에선 손에 꼽을 만큼 큰 곳이라 만화책 정도야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실제로 같이 교육 받고 있는 동기들은 만화책을 열 권씩 빌려서 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또 약간 미묘한 이유로 대구의 책방에는 안 가고 있다. 어차피 곧 떠날 곳이란 생각을 하니 - 자대 배치까지 카운트 3주...oops! - 주소를 등록하고 빌리기가 껄끄럽다는 게 이유. 결국 귀찮다는 거다. 아하하;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동생이 만화책을 보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재수가 끝났다고 만화책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는지, H2 완전판과 노다메 칸타빌레를 계속 사고 있어서 집에 올 때마다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화책에 대한 욕구가 거의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오니 대뜸 내미는 '바람의 검심' 완전판 1권. 뭐, 이건 빌린 거라지만 아무튼 '바람의 검심'이다. 나올 것이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만났잖아.
'바람의 검심'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역시 나에겐 특별한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곤 말하기 힘든데 - 정말 그랬다면 이미 다 모았을 것이다 - 그래도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준 만화라서. 게다가 켄신과 사이토는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뭐가 특별하냐 하면 한창 만화의 세계, 정확히 말하면 본격적으로 일본만화의 세계로 빠져들 시기에 접한 작품이 '바람의 검심'이다. 중2였던 그 무렵, 전학간 학교에서 친해진 친구가 '켄신'이니 '구두룡섬'이니 할 때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기만 했었다. 원래 만화를 좋아했던 나였기에 '바람의 검심'을 본 것은 시간문제였고 지금 생각해도 그 무렵 가장 푹 빠져 봤던 만화 중 하나다.
이른바 메이저격인 일본만화를 본 것은 '드래곤볼' 이후론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1때까진 만화보단 게임쪽에 더 흥미를 뒀었고,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시절엔 그냥 닥치는 대로 아무 만화나 봤으니까. 비단 '바람의 검심'만이 아니다. '슬레이어즈', '사이버 포뮬러 같은 애니까지 포함해서 그야말로 일본만화의 폭격이 있었던 때가 98년 내외의 시기였으니. 지금 내 또래들과 만화 이야기를 해도 자주 언급되는 많은 작품들이 이때 나왔다.
여러가지 떠올랐던 상념들을 뒤로 하고 잠시 작품 자체로 돌아가면, H2와 함께 기다릴 완전판이 또 하나 늘었다. 역시 '바람의 검심'은 켄신이란 주인공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사실 '바람의 검심'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거부감이 들만도 한 만화다. 사무라이를 배경으로 한 거야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바람의 검심'은 아예 메이지 유신지사의 이야기다.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결국 일제의 전신쯤 되는 존재고. 게다가 일본색이 좀만 드러나도 YWCA 등에서 별 소리가 다 나왔던 당시에 - 심지어 '세일러문'이나 '사이버 포뮬러'는 기노모가 나온 인물의 에피소드 자체가 통째로 짤리기도 했다....ㄷㄷㄷ - '바람의 검심'은 노골적으로 일본색을 드러낸 만화이기도 했다. 지금 봐도 정말 심할 정도다.
만약 '바람의 검심'이 메이지 시대에 대한, 그리고 칼잡이에 대한 미화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내가 이 작품을 여기서 언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까칠한 글들'쪽에 올렸겠지. 하지만 여전히 '바람의 검심'은 애착이 가는 만화다. 그것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그 어떤 사탕발림이나 명분으로 포장해도 그게 진실이다. 카오루가 하는 말은 제 손을 한 번도 더럽힌 적 없는 사람이나 입에 담는 어눌한 잠꼬대에 불과해. 하지만 난 그딴 진실보다, 카오루가 말하는 어눌한 잠꼬대가 더 좋은 걸?"
라고 말하는 켄신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안 지금 다시 보는 그의 행동과 말이 어떤 무게를 담고 있는지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거기에 계속 해서 나오는 이상에서 멀어진 메이지 정부의 위선과, 그것을 꼬집으면서도 자신이 믿었던 이상을 지켜나가려고 힘쓰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이 작품을 단순한 '사무라이 만화'라고 치부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켄신도 그렇고 '적토대'에 속했던 사노스케도 그렇고, 사이토 하지메도 그렇고 이 작품의 주역들은 정작 시대의 흐름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이미 '패배한 자들' 혹은 '승리의 열매를 스스로 차버린 자들'이다. 이중에서 삐뚤어진 길로 간 게 시시오일테지. 하지만 그런 시시오조차 나름 매력을 갖고 있는 건, 소외된 자들을 통해서 여전히 모순에 차 있는 당시 메이지시대의 일본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 만화는 그렇게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 결코 아니지만, 묘하게도 그런 분위기가 난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 거슬릴지도 모르는 멋진 칼잡이들의 이야기에 지금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역날검을 든 한 검사가 짊어진 삶의 무게 때문이리라. 시대에 대한 절망적인 좌절도, 권력의 한축에 끼는 짓도, 서투른 복수도 모두 거부한 채 묵묵히 업보를 짊어지고 갔던 떠돌이 검사...
# by | 2007/03/10 15:41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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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멋진 남자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
가능할까요?;
토니로보// 마지막에 나온 켄신의 모습은 비천어검류의 진정한 비기가 불로불사임을 명백히 보여줬죠.(그러나 성상편은...ㅡ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