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17일
왜 한국에서만 토플 대란이?
방금 뉴스에서 한국에서만 PBT 토플 시험을 치른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후에 폰으로 파고다 학원에서 PBT 시험 대비 특별반이 열리니 등록하라는 광고 문자가 왔었다. 1년 반 전에 다닌 학원에서 내 문자를 여전히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 이전에, '왠 PBT 시험?'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감정이 앞섰다. PBT라면 지금의 IBT 이전의 CBT도 아닌, 그 CBT보다 전의 시험방식이지 않은가. 비록 한국의 영어시험에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나이지만, 일단 PBT보다는 CBT나 IBT가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제 와서 PBT를 본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 없었다.
하긴 그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갔고 예상은 그대로였다. 얼마 전부터 폭주하는 토플 지원생을 감당하지 못한 ETS의 파행이 기사로 나왔고, 역시나 PBT 시행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미봉책이었다. 우선 ETS의 태만한 혹은 거만한 운영은 분명 지적할 만한 점이다. 이전부터 기껏 해야 전국에 몇곳의 아주 '작은' 시험 장소를 마련해두고서는 반복적인 시험문제를 내는 주제에 10만원이 넘는 거액의 시험료를 요구하는 것은 '도대체 이 시험료는 어떤 근거에서 측정되었나' 라는 의문이 들었으니까. 시험 장소도 몇몇 곳에 불과해 매우 불편했고 접수 방식도 답답했다. 그 정도로 많은 돈을 받아 간다면 아무리 단순한 영어문제출제 기관이라 해도, 상도덕 차원에서라도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ETS가 한국 수험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한 번이라도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토플 대란 관련 뉴스를 접하면 접할 수록 ETS보다는 한국의 한심한 교육 현실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은 나뿐일까? 그래도 내가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심각한 토플 대란은 없었다. 단지 곧 IBT로 시험 방식이 바뀌기 때문에 CBT에 익숙한 수험생들 사이에서 과열 경쟁이 있긴 했다. 그때만 해도 일본까지 가서 토플을 보는 현상은 시험방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IBT가 정착한 지금에 와서도 시험 접수를 못해 토플 시험응시권(?)이 돈으로 거래되고 토플국제여행패키지(...)가 성행이라는 뉴스에 나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미국 대학에 유학가기 위해 필요한' 토플이 이처럼 인기란 말인가? 물론 한국의 미국유학 열풍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토플은 일상 생활이나 비즈니스와는 관련이 거의 없는 학술적인 면이 강한 시험이고, 시험도 자연히 매우 까다롭다. 한 마디로 정말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에 유학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비용 대 효과가 형편없는 시험이 바로 토플이다.
이어진 뉴스에서 수수께끼는 풀렸다. 일부 대학과 특목고에서 토플 성적을 활용하는 바람에 입시생들까지 토플에 목을 매달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세한 분석은 없고 토플 자체가 IBT로 바뀌면서 시험 응시 횟수가 줄어든 것도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입시생들의 토플 시험 시장 진입은 토플 대란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영향의 정도와 별개로 나는 그 소식 자체가 어이 없었다. 대체 왜 고등학교나 국내 대학에서 토플이 요구되냐는 말이다. 도대체 왜. 앞서도 말했듯이 토플은 미국 대학에서 해외 학생들에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이해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시험이다. 당연히 외국 대학 생활과 관련된 전문 용어가 자주 나오고, 심지어 어려운 문제들은 대학 학과의 기초적인 부분을 영어로 물어보기까지 한다. 이런 시험이 '과학' 고등학교나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유추할 방법을 아는 사람은 좀 알려주길 바란다.
백번 양보해서 이미 과학고나 외고가 그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저 단순한 '입시를 위한 고등학교'로 바뀐 것을 인정한다 해도, 토플 성적은 수능 공부에 하등 도움이 안 되지 않는가. 물론 토플 시험을 소화할 정도면 외국어 영역을 꽤 쉽게 풀 수 있겠지만, 이것은 분명히 비효율적인 공부다. 토플 열풍 전에도 외국어 영역을 잘 하는 학생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국내 대학들의 토플 시험 성적 활용도 납득이 안 가긴 마찬가지다. 영어가 중요한 학과라면 약간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미국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영어시험 성적이 국내 대학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역시 누가 나에게 설명 좀 해주면 좋겠다.(왠지 이런 말투는 하루히의 영향 같애. ㅡ.ㅡ;;;) 취직을 위해 영어공부를 할 거면 최근 기업에서 중시하는 대로 회화 중심의 영어 실력을 키우는 길을 모색하는 편이 낫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의 토플 대란은 ETS의 거만한 대응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이전에 왜곡된 한국의 입시 교육 시스템과 비정상적인 영어 열풍이 한 데 어울러져 만든 결과이다. 나는 역시 1년 반 전에 토플 공부를 했었고, 나름 즐겁게 공부를 했다. 영어권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시험임을 인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나중에 영어권 대학으로 유학을 갈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단순히 입시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토플은 전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각종 언론에서는 토플을 대체할 토종 영어 시험을 확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나로선 그 이전에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높이는 데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현행 공교육을 개선할 방법을 왜 안 찾는지 묻고 싶다.
# by | 2007/04/17 21:06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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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 도움이 되니 -ㅅ-; 자꾸 보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저도 토플/GRE를 봐야하지만 말입니다-_-)
Andrea// 뭔가 영어실력을 검증할 필요는 있는데 수단은 한정된 현실. 하지만 요즘의 모습은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버린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