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29일
사는 모습
내가 춘천을 자대로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면 바로 선배 장교들을 잘 만났다는 점이다. 나랑 같은 특기인 선배들은 3명인데 모두 남을 배려할 줄 알면서도 각각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덕분에 좋은 본보기를 보면서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얻고 있다.
BOQ의 방이 부족한 탓에 아직 살 곳을 얻지 못한 나는 가끔 한 선배의 방에서 신세를 지곤 한다. 그러다가 오늘은 처음으로 다른 선배의 방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에 참 놀랐다.
먼저 자던 방은 언제나 아침에 급히 벗어 던진 추리닝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책상에는 빈 음료수 패트병이 서너 개씩 있곤 했다. 구석에는 먼지가 진득하고 일주일치가 넘는 신문은 폐품으로 변해 방의 한켠을 차지했다. 빈 담배갑과 라이터도 빼 놓을 수 없다. 한편 책상에는 인터넷 단말기와 노트북이 있었고, 넓지 않은 방에 TV까지 마련해 두었다. 덕분에 심심할 일은 없었던 방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표준적인 남자 자취생의 방이었다. 물론 커다란 보충제 상자와 묵직한 아령은 주인의 활달한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 게으른 주인도 아니다. 갈 때마다 방의 어지러움은 딱 '저 정도'였으니까. 즉 그 방의 주인은 며칠씩 청소를 미루다가 너무 어지러워지면 정리를 하는 식이었다. 정말로 일반적인 경우다. 그것이 오히려 편해서 지내기에 부담은 또 없었다.
실제로 그 방에 사는 선배는 활달하고 자기 말대로라면 '들이대길' 좋아하고 자잘한 일에는 잘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다.
한편 지금 묵고 있는 방에는 컴퓨터나 TV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대신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짙은 빛깔의 나무 책장으로, 거기에는 톨스토이의 소설이나 램브란트를 다룬 책이 꽃혀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알려주는 성경은 영문판을 포함하여 여러 권이 보인다. 어지럽게 나와있는 패트병도 없으며, 모든 음료수는 작은 2단식 냉장고에 들어 있다. 세재조차 작은 봉지에 담겨 입구는 집게로 꼭 막아 놓았다.
꽤 큰 옷걸이에는 바지들이 모두 반듯이 반으로 접혀 집게식 옷걸이에 매달려 있다. 보기 좋게 걸려 있는 옷들은 흡사 백화점의 옷가게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게 한다. 가장 놀란 것은 화장실의 비누곽이었는데, 비누곽 위에 네모나게 자른 스펀지를 두어서 비누가 눌러 붙지 않도록 한 주인의 세심한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지적이고 정갈한 느낌은 앞의 방과는 다른 정서적인 편안함을 주었다. 어찌 보면 답답할 것도 같은 분위기이나, 의외로 주인의 괜찮은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멋진 옷들, 차갑게 먹으려고 일부러 냉장고 속에 둔 사탕 같은 것들은 주인의 성격이 그리 삭막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은 정말 일을 꼼꼼하게 하고 대단히 지적인 사람이다. 타인에게 깐깐히 굴지는 않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는 철저한 성격이다. 내가 군대에 와서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감탄할 정도로 뚜렷한 삶의 방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정말 다양하다는 점, 가치관은 저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날이다. 중요한 것은 신세지고 있는 방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나 자신이 어울릴 수 있는 방식을 찾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색깔이 뚜렷한, 멋진 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by | 2007/04/29 12:49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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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개성이고 나를 나타낼수 있는 표현중의 하나이구요 ㅎㅎ
하지만 제가 혼자 살게되면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