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29일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말 내내 부대에서 못나갈 줄 알았는데 어제 자기 전에 갑자기 선배가 일요일에는 내려가도 좋다고 했다. 하여간 군대란 조직은 정말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곳이다. ㅡㅡㅋ 일요일에 내려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통근차가 내려가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부대가 있는 곳은 900미터 고지. 그것도 산길은 구불구불 나선계단처럼 나있어서 차로도 25분이 걸린다.
그러나 차가 없다고 부대에 있을소냐. 걸어서 내려가기로 작정하고 부대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 듯 해서 허탈했지만, 곧 희안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강원도의 산답게 험준하게 솟은 계곡들과 벌써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울창한 녹림, 그 와중에 꿋꿋히 피어있는 진잘래꽃 등을 바라보며 걷자니 수십 분의 시간에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이 우스워졌나 보다. 내려가는 길에는 정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입고 있는 알록달록한 옷만 아니었으면 한가한 곳에 등산이라도 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적막을 깨는 소리라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산을 둘러보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자니 역시 이곳에 온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많은 동기들이 산속이라고 기피했지만, 나는 역시 산이 좋다. 그렇다고 내가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고 풍류를 아는 멋쟁이는 더더욱 아니지만, 이전부터 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존재였다.
문득 이전에 본 영화 하나가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듯 싶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케무샤'. 구로사와 아키라라면 일본의 거장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영화에 대해선 그야말로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나로선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유일한 예외가 카케무샤로 옛날에 변덕이 작용해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다. 영화의 배경인 일본 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조차 전무했었고, 영화도 그리 흥미로운 스토리는 아니었으므로 볼 때는 썩 재미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영화는 내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마 '카케무샤'가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한 장면 때문이리라. 주인공이 전장에서 궁지에 몰렸을 무렵, 후퇴(정확히는 기억 안 난다)를 요구하는 부하들 앞에서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한 마디로 주위를 압도했던 장면. 본래 주인공은 유명한 무사의 그림자무사(대역. 카케무샤라는 일본어는 그림자무사라는 뜻)에 불과했으므로 주인공을 깔보던 가신들은 그 말에 놀라 명령을 따른다. 일시적이었다 해도 그 순간만은 주인공은 정말로 위대한 무사였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대혼란 앞에서도, 세상의 어떤 거친 풍파 속에서도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산은 언제나 자신의 긍지를 고고히 지키며 부질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들을 꾸짖는다. 동시에 자기 안에서 평화를 찾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을 껴안는다. 조그만 실수 하나에 초조해 하던 나조차도 산은 돌보아 주었다. 그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며 하산했던 40분은 재미있게도 이번 한 주 중에서 가장 평안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이처럼 드넓은 품 안에 있다. 부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좀더 대범한 마음가짐으로 다가가자. 이 안에서 짜증내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이다.
보태기: 내려온 길이 더 좋았던 이유 하나.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이제 20분 정도 더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마침 산 아래의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지나가던 찰나, '아저씨~'라고 부르는 목소리. '아저씨'라는 표현은 넘어가고(아....남자 군바리는 다 아저씨지..근데 여자 군인은 아줌마라고 안 하잖....-_-;;) 돌아보니 '내려갈 거면 이 차 타요. 아래까지 내려가니까.' 라고 차를 가리키신다. 아무리 여유롭게 내려왔다 해도 갖고 있던 짐도 있어서 피곤하던 참인데 이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도시에선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태워다 주는 일도 없을 텐데, 이것이 인심이란 것일까. 뜻밖의 친절 덕에 더욱 행복한 하루.
그러나 차가 없다고 부대에 있을소냐. 걸어서 내려가기로 작정하고 부대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 듯 해서 허탈했지만, 곧 희안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강원도의 산답게 험준하게 솟은 계곡들과 벌써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울창한 녹림, 그 와중에 꿋꿋히 피어있는 진잘래꽃 등을 바라보며 걷자니 수십 분의 시간에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이 우스워졌나 보다. 내려가는 길에는 정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입고 있는 알록달록한 옷만 아니었으면 한가한 곳에 등산이라도 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적막을 깨는 소리라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산을 둘러보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자니 역시 이곳에 온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많은 동기들이 산속이라고 기피했지만, 나는 역시 산이 좋다. 그렇다고 내가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고 풍류를 아는 멋쟁이는 더더욱 아니지만, 이전부터 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존재였다.
문득 이전에 본 영화 하나가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듯 싶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케무샤'. 구로사와 아키라라면 일본의 거장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영화에 대해선 그야말로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나로선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유일한 예외가 카케무샤로 옛날에 변덕이 작용해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다. 영화의 배경인 일본 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조차 전무했었고, 영화도 그리 흥미로운 스토리는 아니었으므로 볼 때는 썩 재미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영화는 내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마 '카케무샤'가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한 장면 때문이리라. 주인공이 전장에서 궁지에 몰렸을 무렵, 후퇴(정확히는 기억 안 난다)를 요구하는 부하들 앞에서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한 마디로 주위를 압도했던 장면. 본래 주인공은 유명한 무사의 그림자무사(대역. 카케무샤라는 일본어는 그림자무사라는 뜻)에 불과했으므로 주인공을 깔보던 가신들은 그 말에 놀라 명령을 따른다. 일시적이었다 해도 그 순간만은 주인공은 정말로 위대한 무사였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대혼란 앞에서도, 세상의 어떤 거친 풍파 속에서도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산은 언제나 자신의 긍지를 고고히 지키며 부질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들을 꾸짖는다. 동시에 자기 안에서 평화를 찾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을 껴안는다. 조그만 실수 하나에 초조해 하던 나조차도 산은 돌보아 주었다. 그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며 하산했던 40분은 재미있게도 이번 한 주 중에서 가장 평안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이처럼 드넓은 품 안에 있다. 부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좀더 대범한 마음가짐으로 다가가자. 이 안에서 짜증내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이다.
보태기: 내려온 길이 더 좋았던 이유 하나.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이제 20분 정도 더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마침 산 아래의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지나가던 찰나, '아저씨~'라고 부르는 목소리. '아저씨'라는 표현은 넘어가고(아....남자 군바리는 다 아저씨지..근데 여자 군인은 아줌마라고 안 하잖....-_-;;) 돌아보니 '내려갈 거면 이 차 타요. 아래까지 내려가니까.' 라고 차를 가리키신다. 아무리 여유롭게 내려왔다 해도 갖고 있던 짐도 있어서 피곤하던 참인데 이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도시에선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태워다 주는 일도 없을 텐데, 이것이 인심이란 것일까. 뜻밖의 친절 덕에 더욱 행복한 하루.
# by | 2007/04/29 13:22 | 트랙백(3)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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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핀투리키오님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시진 않으셨겠지만;;;
홍염의눈동자// 등산은 확실히 가져볼 만한 취미 같습니다. 게을러서 인연이 멀지만....--
치천사E군// 아아....하기야 저희도 여단장급 이상이 움직이라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