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 무엇이 인간을 실격시키는가?

가끔 인간이란 너무 슬픈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인간실격도 그런 책이었다. 인간실격. 인간이라는 자격이 없다는 선고를 인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대체 어떤 지옥 같은 고통이 사람을 그 지경으로 몰아간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은 결코 남 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를 좋아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외로웠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니 그가 특별히 나약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인간의 선천적인 영혼의 기질이란 너무나 다양해서 때로는 일반적인 접근으로는 도저히 치유가 안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주인공의 경우는 보편성으로부터 완전한 유리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은 세상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인 죄의 반대 개념을 묻는 대목에서, 주인공은 '죄'의 반대 개념은 '법률'이라는 호리끼의 대답에 코웃음을 친다. 이어지는 혼잣말에서도 주인공은 끝내 죄의 반대 개념을 찾지 못한다. 선은 악의 반대 개념이고, 사랑은 증오의 반대 개념이다. 말장난 같지만, 죄의 반대 개념을 못찾는 주인공은 역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에겐 자신을 지탱해줄 어떤 신념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한 것은 하나였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자신을 실격시킬 수 없다. 인간을 결정적으로 실격시키는 것은 같은 인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가 실격으로 몰린 내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너무나도 인간적이라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인공은 권력가인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는 아양을 떨다가 뒤에 가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이런 면들이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고, 그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그의 모습을 나약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선 적어도 이런 나약함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짓밟는 '강인함'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주인공은 기도까지 한다. 자신을 친절하게 받아준 모녀에게, 만약 신이 있다면 그녀들을 축복해 달라고. 그것은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기도였다.

그러므로 주인공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킨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고, 그 원인이란 주인공의 아버지와 벗이라면 벗이었던 호리끼다. 특히 권위적인 아버지는 주인공이 인간을 불신하고 두려워하게 만든 가장 큰 주범이다. 이는 주인공의 아버지를 탓하는 작중의 마지막 문장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한편 호리끼는 그야말로 인간실격이란 말이 어울리는 작자로서, 그나마 주인공이 갖고 있던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감마저 유린한 소인배이다.

물론 이 둘이 아니었더라도 주인공이 정상적으로 살았으리란 보장은 별로 없다. 그 정도로 주인공이 안고 있던 근본적인 고독과 소외감은 깊었으니까. 하지만 결코 '인간실격'이란 말을 스스로 할 정도로까지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점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결국 '인간실격'은 제목과 달리, 절대로 인간은 포기해서는 안 될 존재란 점을 일깨워 준다. 인간실격에 내몰린 자는 도와주어야 할 존재지, 포기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진짜 인간실격인 자들은 타인을 이용하고 자기 권력대로 휘두르기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주인공과는 다르게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 바로 인간실격인 자들에게 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by 핀투리키오 | 2007/05/26 21:4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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