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31일
참언론에 돈을 보내다

얼마 전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역번호 02. 서울에서 안 산지 오래 되어서 '02'번은 광고 전화가 아니면 보기 힘든 번호였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받아 보니 '시사인'측에서 온 전화였다. 그동안 구독해주셔서 감사하고 받아보는 데 불편한 점은 없었냐는 등의 말에 아주 잘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미약하나마 내가 창간에 힘을 보탰던 언론이다. 그것도 올바른 언론을 살려야 한다고, 나의 바람을 담아서 응원했던 시사주간지다. 전화가 왔다는 점이 왠지 반가웠다. 불편하긴 무슨. 꼬박꼬박 보내주기만 하면 되니 힘 내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 '재구독을 하실 의향은 있으신가요?' 아하, 역시 02번은 광고 전화였다. 소비자 상담 전화....같은 것이 아니었다. 어색했던 헛웃음도 잠시, 곧 바로 재구독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광고 전화는 귀찮은 마음에 바로 끊는데 말이다. 전화하신 분은 기쁜 목소리로 독자분에게 편한 청구 방법을 물어본 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끊었다.
문제는 내 성격의 게으름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 두고선 8월이 다 가도록 재구독 신청을 하지 않았다. 만약 지난 주에 받아 본 호에 그 종이가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잊어버렸을 것이다. 어느 때와 달리 책이 담긴 봉투에는 흰 종이가 같이 있었다. 그제서야 뻔뻔했던 재구독 선언이 떠올랐다. 분명히 재구독 청구서다. 멋대로 상상하고 방 안에 놓았던 것을, 오늘에야 뜯었다. 9월이 되기 전에는 어떻게든 보내야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측은 틀렸다. 흰 종이는 편집국장의 편지였다. 청구서 같은 게 아니었다. 물론 타이핑으로 일괄적으로 친 것이긴 하지만, 최초에 보내는 사람 이름에는 내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아마 지난 해에 정기구독을 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낸 듯 싶었다. 편지는 당당했다. 1년 동안 터뜨린 '신정아 단독 인터뷰, 김경준 메모 단독 보도, 김용철 변호사 양심 고백' 등의 특종들, '시사IN'이 없었다면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은 없었을 것이란 자랑. 한 마디로 자신들은 한국의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권력의 최상층에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장 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긍지였다.
동시에 편지는 애절했다. 앞선 자랑에도 불구하고, 그 끝은 재구독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지금 독립 언론으로 우뚝 설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섰습니다. 다시 한번 도와주십시오. 재구독으로 힘을 보태주십시오. 반드시 건전한 언론사를 만들겠습니다. 기필코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그것은 솔직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비굴함은 없었다. 마지막 포부가 거짓 포장이 아닌 까닭은 앞서 보여준 당당한 전과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전사들은 다시 한 번 신뢰만 해준다면,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비추는 투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어찌 안 도와줄 수 있을까? 나의 게으름을 탓하면서, 당장 시사인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재구독을 신청했다.
사실 내 힘은 굉장히 미약하다. 나는 그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많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설령 부족한 점들이 많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시사인의 존재는 소중하다. 편지에서 시사인은 자신들의 두 가지 꿈을 밝혔다. 하나는 지배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영과 편집의 완벽한 분리가 그것이다. 사주의 쌈짓돈처럼 움직이는 언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수익 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기구독의 수익비율을 광고수익의 그것보다 높게 유지한다. 광고주인 기업의 눈치를 봐서 써야 할 기사를 못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것은 언론으로서의 공적 책임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우리는 굳이 애쓰지 않더라도, 이런 조건들과 정 반대의 형태를 갖고서 권력의 한축이 되기에 바쁜 대형 언론사들을 잘 알고 있다. 길거리 가게들 곳곳마다 널려있는 이상한 신문들을 볼 때마다, 시사인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도 바른 언론이 기를 펼 수 있는 희망이 있을 테니까.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시사IN이 스스로 표지에 박아 넣은 자신들의 모토다. 어떻게 보면 언론으로서 당연한 덕목인 '정직'이 차별성이 될 수밖에 없는 이곳,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힘들게 태어났다. 1년 동안 가열 차게 싸워 왔다. 그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직 시사IN이 갈 길은 멀다. 여비는 많을 수록 좋다. 나는 내 돈을 정직한 사람들에게 맡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투자라고 자신하면서.
보태기 : 약 1년 전에 썼던 시사IN 창간 기념(?) 포스팅. 정말로 벌써 1년이다. http://leoford.egloos.com/3746650
보태기 2: 혹시 몰라 덧붙이는 시사IN의 정기구독 페이지. http://www.sisain.co.kr/com/kd3.html
# by | 2008/08/31 23:09 | 세계에 말을 걸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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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아버지가 먼저 보시고 그걸 제가 우편으로 받는 낭비;를 하면서 한 주씩 딜레이 되는 상황이죠.
...근데 왜 자꾸 '남은 시간이 어중간해서'라는 말에 더 눈이 가는지. 전 정기구독 1년 더 해도 2달 가량 여유가 있군요. ㅜㅜ
꾸벅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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