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삶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속에서 천불이 날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 결과를 냈는데도 부당한 지시나 제도에 의해 욕만 먹을 때가 그렇다. 지켜보던 선배가 말했다. 이곳이 원래 그런 곳이다.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해라. 어라,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이다. 이전에 대학입시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원래 수험생 생활이 힘들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라. 유명한 자기계발서나 잠언집 역시 사고의 긍정적인 전환을 단골메뉴처럼 강조한다.


 긍정적 태도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무현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이 나란히 서거했을 때다. 보수언론 및 집권정당이 고인들의 유지 중 유독 강조한 것이 화해와 통합이었다. 긍정적 사고 강조의 사회적 버젼쯤 되려나. 하긴 누군들 웃는 얼굴을 싫어할까? 일의 능률도 즐거운 태도로 일할 때 오른다. 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편이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상태보다 행복하고 충만하다. 그래서인지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사방에서 '좋게 생각해!'라고 외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맹목적인 교훈과 충고가 불편하다.
 왜냐하면 무차별적인 긍정은 문제의 원인을 회피하게 하거나 감춤으로써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입시제도의 모순에는 학벌체제란 구조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입시만 끝나면 더 이상 교육문제에 관심을 안 갖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현 정권과 보수언론이 말하는 화해와 통합이란 두 전직 대통령이 제기했던 한국 기득권세력의 문제점을 감추기 위한 수이기도 하다.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도 부당한 처지에 마냥 감사하는 일은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고, 그러지 않기 위해선 어느 정도 스스로를 속여야만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후퇴시켜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란 말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늘 우울할 것이고 인간관계에서 소외될 것이다. 양 극단을 제외하면 가장 무난한 답은 ‘그때그때 따라서’이다. 좋은 일에는 긍정적으로, 나쁜 일에는 부정적으로 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준이 없는 처세술은 그때그때의 흐름에 휩쓸리기 쉽다. 게다가 이 흐름은 전적인 긍정이나 부정인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개인적인 다툼이든 사회적인 논란이든 소모적인 싸움이다.


그러므로 일관적인 삶의 태도란 측면에서 긍정과 부정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나는 이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했던 사람들을 알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비극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에 삶의 위대함이 있다고. 얼마 전에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죽을 고비만 수 차례를 넘기며 온갖 고초를 겪은 분이 죽기 몇 달 전 일기장에 쓴 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삶의 부정적 측면과 맞서 싸우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해 나갔다는 점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지향하는 가치’가 뚜렷했기 때문이며, 삶을 언제나 사랑하되 소중한 가치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선 확고히 부정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평생 자아실현을 탐구했고 그것은 인간성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쓰러지기 전까지도 민주주의와 남북평화를 추구했다.


지향하는 것을 일관되게 지키기란 어렵다. 특히 소망이 곧고 옳을수록 더 그렇다. 앞선 두 사람 역시 숱한 고난을 겪어야했다. 극도의 정신불안과 몇 번의 이혼부터 권력의 살해위협까지, 삶의 어느 하나 평탄한 시절이 없었다. 대신 그만큼 그들의 삶은 행복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혹은 단순히 자기감정에 못이겨서 꿈을 포기하거나 하지 않았다. 헤세와 김대중은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이었다. 오직 주체적으로 살아간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까지, 그들은 자기 뜻을 관철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긍정은 부정을 극복하기 위한 힘이지 부정한 것을 피하기 위한 핑계가 아니다. 긍정은 삶을 정직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근거다. 그러니 긍정의 토대가 될 가치를 찾고, 그것을 지켜나가라. 앞서 간 긍정의 대가들이 보여준 삶의 궤적처럼 말이다.

by 핀투리키오 | 2009/09/12 22:30 | 나의 세계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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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토니로보 at 2009/09/14 18:26
아 마지막 글귀가 참 멋져서 군대가기 준비중인 동생에게 그대로 전해주고싶네요
Commented by 핀투리키오 at 2009/09/15 23:39
헉..군대 준비중이니...왠만한 말로는 위로가 안 될 겁니다.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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