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역번호 02. 서울에서 안 산지 오래 되어서 '02'번은 광고 전화가 아니면 보기 힘든 번호였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받아 보니 '시사인'측에서 온 전화였다. 그동안 구독해주셔서 감사하고 받아보는 데 불편한 점은 없었냐는 등의 말에 아주 잘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미약하나마 내가 창간에 힘을 보탰던 언론이다. 그것도 올바른 언론을 살려야 한다고, 나의 바람을 담아서 응원했던 시사주간지다. 전화가 왔다는 점이 왠지 반가웠다. 불편하긴 무슨. 꼬박꼬박 보내주기만 하면 되니 힘 내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 '재구독을 하실 의향은 있으신가요?' 아하, 역시 02번은 광고 전화였다. 소비자 상담 전화....같은 것이 아니었다. 어색했던 헛웃음도 잠시, 곧 바로 재구독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광고 전화는 귀찮은 마음에 바로 끊는데 말이다. 전화하신 분은 기쁜 목소리로 독자분에게 편한 청구 방법을 물어본 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끊었다. 문제는 내 성격의 게으름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 두고선 8월이 다 가도록 재구독 신청을 하지 않았다. 만약 지난 주에 받아 본 호에 그 종이가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잊어버렸을 것이다. 어느 때와 달리 책이 담긴 봉투에는 흰 종이가 같이 있었다. 그제서야 뻔뻔했던 재구독 선언이 떠올랐다. 분명히 재구독 청구서다. 멋대로 상상하고 방 안에 놓았던 것을, 오늘에야 뜯었다. 9월이 되기 전에는 어떻게든 보내야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측은 틀렸다. 흰 종이는 편집국장의 편지였다. 청구서 같은 게 아니었다. 물론 타이핑으로 일괄적으로 친 것이긴 하지만, 최초에 보내는 사람 이름에는 내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아마 지난 해에 정기구독을 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낸 듯 싶었다. 편지는 당당했다. 1년 동안 터뜨린 '신정아 단독 인터뷰, 김경준 메모 단독 보도, 김용철 변호사 양심 고백' 등의 특종들, '시사IN'이 없었다면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은 없었을 것이란 자랑. 한 마디로 자신들은 한국의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권력의 최상층에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장 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긍지였다. 동시에 편지는 애절했다. 앞선 자랑에도 불구하고, 그 끝은 재구독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지금 독립 언론으로 우뚝 설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섰습니다. 다시 한번 도와주십시오. 재구독으로 힘을 보태주십시오. 반드시 건전한 언론사를 만들겠습니다. 기필코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그것은 솔직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비굴함은 없었다. 마지막 포부가 거짓 포장이 아닌 까닭은 앞서 보여준 당당한 전과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전사들은 다시 한 번 신뢰만 해준다면,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비추는 투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어찌 안 도와줄 수 있을까? 나의 게으름을 탓하면서, 당장 시사인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재구독을 신청했다. 사실 내 힘은 굉장히 미약하다. 나는 그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많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설령 부족한 점들이 많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시사인의 존재는 소중하다. 편지에서 시사인은 자신들의 두 가지 꿈을 밝혔다. 하나는 지배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영과 편집의 완벽한 분리가 그것이다. 사주의 쌈짓돈처럼 움직이는 언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수익 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기구독의 수익비율을 광고수익의 그것보다 높게 유지한다. 광고주인 기업의 눈치를 봐서 써야 할 기사를 못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것은 언론으로서의 공적 책임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우리는 굳이 애쓰지 않더라도, 이런 조건들과 정 반대의 형태를 갖고서 권력의 한축이 되기에 바쁜 대형 언론사들을 잘 알고 있다. 길거리 가게들 곳곳마다 널려있는 이상한 신문들을 볼 때마다, 시사인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도 바른 언론이 기를 펼 수 있는 희망이 있을 테니까.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시사IN이 스스로 표지에 박아 넣은 자신들의 모토다. 어떻게 보면 언론으로서 당연한 덕목인 '정직'이 차별성이 될 수밖에 없는 이곳,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힘들게 태어났다. 1년 동안 가열 차게 싸워 왔다. 그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직 시사IN이 갈 길은 멀다. 여비는 많을 수록 좋다. 나는 내 돈을 정직한 사람들에게 맡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투자라고 자신하면서. 보태기 : 약 1년 전에 썼던 시사IN 창간 기념(?) 포스팅. 정말로 벌써 1년이다. http://leoford.egloos.com/3746650 보태기 2: 혹시 몰라 덧붙이는 시사IN의 정기구독 페이지. http://www.sisain.co.kr/com/kd3.html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위로 받을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가 잘못된 것이지, 너가 못난 게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가 던졌던 작은 돌이 누군가에겐 흉기가 되기도 하고 선물이 되기도 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모든 게 불확실해서 나의 조국은 오직 나 자신입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세상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존재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그 기자회견장에서 강시우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아야만 했다. 그가 주사파든 아니든 프락치든 운동권 투사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국가에게, 권력자에게 상처 받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한 인생이 있었다는 점뿐이다. 거기 당신, '인간'이니 '진실'이니 하는 입발린 소리 하기 이전에 강시우의 말을 좀 들어요. 광주항쟁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광주항쟁은 남한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우연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이 죽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미팅을 하고 섹스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극히 단순했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이나 부산, 평택이나 강릉쯤에 있었기 때문이다. (...) 광주항쟁은 1980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사람들을 거의 대부분 우연한 존재로 바꿔버렸다. 그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스스로 학습을 시작하고 조직을 만들었다. 이 글을 읽으면 뭔가 찡하지 않나? 아무리 당신이 80년대와는 상관이 없는 신세대 새내기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당신이 운동권을 낡은 사고방식의 구시대 유물로 치부한다 해도, 최소한 당시에 저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약간은 이해가 가지 않냐는 말이다. 마침 김귀정 이야기도 나온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해마다 특정 시기가 되면 한 사람을 기리는 초가 켜지곤 했었다. 또 그분을 기리기 위한 내용의 책도 나눠주었다. 퇴계로 좁은 길에서 시위를 벌이던 김귀정이 죽은 건 1991년 5월. 그렇게 먼 시절도 아니잖아. 불과 20년도 덜 지난 과거. 그때는 시위하다 정말로 죽을 수 있었대. 그래? 하지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그대들이 우연히 광주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우연히 이 시대에 이십대가 되어 대학교에 들어왔을 뿐이야. 그러니 우리에게 무슨 부채라든가 당연히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그렇게 목청 높여 말해봤자 실감이 안 나는 걸 어떡해? 마음대로 사람의 삶을 너희 방식에 맞추려 하지 마. 당연한 듯이 하나로 만들지 말라고. 사실 나도 그래. 김귀정 누이에 대한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분의 사진 앞에 서도 내가 당시 투쟁했던 사람들에게 공감하기란 불가능했으니까. 특히 '지하를 거점으로 서울을 장악하라'라든가 식민지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제국주의에 대해 투쟁하고, 북한과 함께 진정한 민족통일/민중해방을 이루자 같은 말이 나오는 대목에선 어안이 벙벙했지. 반공주의 어쩌고 하기 이전에 나에게 북한은 죠지 오웰의 '1984'년의 훌륭한 모델에 불과했으니까. 통일은 좋지만 그런 식의 환상적인 해결은 몽상이다. 차라리 DJ-노무현의 대북포용정책이 현실적이지. 그런데도 총학 선거에선 팜플렛 뒤편에 '북한과 연계한 대학 캠퍼스' 같은 공약이 있더라. 최대한 현실적인 대안들로 꽉꽉 채워도 학우들이 투표해줄까 말까 한 국면에서. 아,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의 민노당이 '코리아 연방제' 들고 나왔을 때도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총학선거에서 그 후보들을 지지했었다. 사실 그 공약은 뒤편에 나온 일부였고 다른 것들은 마음에 들었거든. 적어도 그런 점들은 내가 김귀정 누이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런 방식은 이제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하지만 '우연히' 다른 시기에 태어난 것을 인정하고 '나의 조국은 나뿐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만큼 앞서 싸웠던 자들 덕분에 독재정권이 붕괴한 것도 인정해야겠지. 왜, 영화 '박하사탕'에서 보면 주인공 설경구가 경찰이 되어서는 운동하던 학생 고문하잖아. (고문하는 걸 보던가?) 그때 그 학생, 고문에 비명 지르다 못해 똥을 질질 싸던데. 어떤 순화된 말로도 이 장면을 달리 표현할 수 없더군. '배설했다'고 하리? 그건 더 웃기다. 그렇게 '우연히'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무수히 있었다면, 그 뒤에 '우연히' 캠퍼스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 같지는 않다. 아, 물론 또 다른 설명도 가능하네. 뉴라이트처럼 '경제가 발전한 덕분에 민주화도 되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궤변이 어디 있냐고 성토할지도. 하기사 주인공만 해도 김귀정이 죽던 때에 자기 애인 찾으려고 퇴계로 좁은 골목길을 뛰어 다녔더만. 그런데도 주인공은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같은 시간,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여학생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은 항상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전혀 관련 없는 삶들이 켜켜이 쌓인다. 그래서 사실 이야기를 쫓아 가기가 좀 어렵기도 했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애인의 죽은 삼촌 이야기, 두 번 태어난 남자의 이야기, 그와 같이 다니는 일본인 여자, 나치 시절 수용소에 갇혔으면서도 살아남은 유태인까지. 모두가 각자에게 아무 의도도 없이 살았지만, 우연히 그들의 행동은 곳곳에서 교차하고 겹친다. 그런 식으로 세계는 바뀐다. 때로는 격동적으로, 때로는 조금씩. 그러니 우연히 다르게 태어나고 다른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고통받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자. 그들도 왜 하필 자신들이 아파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테니까. 사실은 그들도 그저 다른 인간의 몸에서 느낄 수 있는 약간의 온기면 행복했을 사람들이므로. 꼭 누군가 주장하는 대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가 되기 싫다면 다른 방식으로 해보는 거다. 그것이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둠 속에서 빛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리라.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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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가자, 키스를..觀鷄者의 망상 공간 Spaurh의 느긋한 블로그 이를 드러내다! 꺾이지 않는 펜 CookieBox Parhynh 자작령 지조자의 아브에 의한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Or.. 빌트군의 빌트라테이션 소울이터의 게임과 애니.. Dust's house 고양이씨의 생선가게 노래의 유혹♪-♬거울의.. Hineo, 중력에 혼을 .. 길과 그림자, 그리고 달.. '돌아오지 않는 숲' 블로그를 만들어 봅니다. YU-E's Anime-Revie.. 먼 별을 헤아리며 파란막장블러그 치군의 잡동사니 창고 4번가의 쩨쩨한 악취미 까페 성민스 아지트 Simple Life 씬 주황새의 공간 Everyday so sweet plody의 뉴스로 주절.. 끝이 있는 공상과 끝이 없.. 임시 개장 매달린 자들의 발라드 이녁의 모순없는 세계 Part2 홍염의눈동자의 고유결계 몰카 설치를 의무화한 .. 생각을 정리하려다.. .. 현실과 이상의 경계 최근 등록된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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