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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즈 오브 리버스 : RPG의 클래식한 재미를 새삼 느끼다


일본 RPG 게임 좀 해본 사람들이라면 '테일즈' 시리즈를 모두 알 것이다. 구체적인 연도까진 모르겠으나, 첫 작품인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가 무려 SFC 시절에 발매되었으니 시리즈 역사가 십 년 이상이다. 당시 SFC가 없던 나는 그저 공략집만 보며 군침을 흘렸던 쓰라린 기억이 난다.

이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건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 때부터다.(라고 안다.ㅎㅎ) 일본 그룹 DEEN의 노래와 기막히게 어울렸던 오프닝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고 있고, 이후 '테일즈 = 오프닝을 기대해보자' 란 생각을 퍼뜨렸을 정도다. 그후로 많은 시리즈가 나왔지만 나와 인연을 맺은 적은 없다.

아마 굳이 찾아서 할 필요까진 못느꼈던 것이다. 사실 테일즈 시리즈는 스토리가 기가 막히게 좋다거나 특출나게 뛰어난 명작이란 평을 듣지 못한다. 대신 미려한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들, 액션성이 뛰어난 전투 시스템, 적당히 재미있는 스토리, 제법 미려한 2D 그래픽 등등이 한데 어울러진 수작이란 이미지다. 음식으로 치자면 특품 요리는 아니더라도 맛깔나게 차려진 정식 같다고나 할까? RPG에 대해선 유독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로선 '하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계속 안 하던 시리즈다.

그런 내가 요즘 유일하게 하고 있는 게임이 '테일즈 오브 리버스'다. 동기는 단순하다. PSP로 일본어를 접하고자 JRPG를 찾던 중 마침 마트에서 팔던 것이 리버스뿐이었다. 동생은 테일즈 시리즈를 좋아해서 PS2판으로 집에 있지만, PSP로 나온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큰 흥미를 못느꼈으나 지금은 할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 (단, 할 때가 많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ㅡㅜ) 대충 검색해보니 스토리 평은 썩 좋지 않았다. 현재 나는 막 중반을 넘어선 시점이라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진행만으로도 일본 RPG의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이게 옛날에야 통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애니조차 (폄하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카테고리에서 비교하자면) 제법 복잡한 스토리가 많은 세상에서 어찌 먹혀들겠는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치단결하면 만사 OK!' 는 식상하고 낯간지럽다.

그런데 왜 계속 하냐고? 중심 스토리는 분명 단순하다. 하지만 캐릭터 한명 한명의 이야기는 세세하고, 스토리 자체가 흘러가는 방식은 매끄럽다. 특히 전투가 매우 재미있다. 액션 RPG에 가깝지만 단순히 치고받는 게 아니라 대열을 유지하면서 아군들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다니는 일반 몹들한테도 고전하게 된다. 게다가 타격감도 아주 좋아서 버튼을 누르며 기술을 쓰는 맛이 쏠쏠하다. 스토리를 혹평하는 사람들조차 전투 하나만은 칭찬 일색일 정도.



그렇다 해도 가장 큰 이유는 '말을 알아들으니까' 이다. 지난 몇 달 동안 했던 일본어 어휘 공부가 유용하긴 유용했다. 이전에는 상황이나 발음으로 유추했던 단어들을 이젠 이해할 수 있으니까 게임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모르는 단어도 많지만, 그런 단어들조차 한 번 정도는 외웠다가 까먹었던 것들이라 게임 상황을 보면서 다시 떠오른다. 특히 '스크린 챗'이란 시스템이 게임 진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테일즈에서, 일본어 이해 능력은 게임의 몰입감을 좌우할 정도다. (스크린 챗은 캐릭터들 간의 회화를 보여주는 테일즈 특유의 시스템으로서 게임 진행에 필수적은 아니지만, 케릭터들의 감정이나 게임 진행 힌트를 보여준다.)

게다가 더 큰 재미는 스스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원래 일본어 게임을 할 때는 늘 공략집에 의존해왔으므로 - 그 기원이 아마 처음 접한 RPG인 FF 3부터였으니까 까마득하다 - 이벤트 진행도 공략을 보고 처리했다. 그런데 리버스에서는 '어...이 사람 말을 들어보니 여기로 가면 되나..?' 이렇게 진행해보니 정말로 하나하나 풀리는 것이다. 마을사람 A의 말을 듣고 힌트를 얻고 그 장소로 가서 물건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스토리를 진행한다. 정말 정석적인 진행이지만, 스스로 하는 맛이란 공략을 보고 하는 것과 아주 달랐다. 옛날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나 '대항해시대 2'를 하며 느꼈던 재미였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클래식한 맛. 하지만 그 맛이야말로 게임을 계속 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물론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도 공략집은 요긴할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비중을 늘려야겠다. 이미 다시 이 재미를 맛봤으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일본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어 공부를 할 수록 오히려 게임을 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언젠가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보태기 : 여담인데 PSP판 '리버스'는 PS2판과 그래픽 차이가 거의 없다. 원래 PSP가 거의 PS2에 가까운 성능이었음은 알았지만 새삼 놀랐다. 몇 년 전만 해도 휴대용 게임기로 이런 퀄리티의 게임을 즐길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by 핀투리키오 | 2009/06/07 22:52 | 세계와 교감하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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